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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제주특별자치도는 화산활동에 의해서 형성된 땅이라 할 수 있으며 수천 년에 걸쳐 참라인이 살아온 빌렛(어음) 동굴유적 및 곽지패총이 발견되는 걸로 봐서 제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이미 구석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10세기부터 고려의 지배를 받으며 민란, 목호의 난 등 큰 난리를 치르고 13세기에는 삼별초군이 제주도를 본거로 항쟁을 하였다. 유수암에는 항몽 삼별초군이 항파두성에 웅거할 때 함께 따라 온 어느 고승이 지금의 유수암 절동산 아래 맑은 샘을 발견하고 그 언덕 아래 조그만 암자를 지어 태암감당이라 이름하여 불시를 시작한 것이 처음으로 이곳에 인적이 닿은 시총이다. 수연 후에 항파두성이 함몰할 때 김통정 장군의 처 이화선이 수하를 데리고 유수암천이 흐르는 이곳으로 피신하여 양지 바른 곳에 토실을 짓고 남은 여생을 살다가 명을 마쳤으므로 속칭 종신당이라 전해오며 이때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여몽연합군에 의하여 삼별초를 토형한 원나라는 탐라에 10개소의 목마장을 설치하여 국마를 기르게 하였는데 유수암경은 오소장에 속했고 그 목자들을 금물덕악(지금의 금덕봉) 아래 관리사용에 편리하도록 집단으로 모여 살게 하였음으로 이곳이 바로 거문덕이였으며, 유수암 본동보다 약 100년 가까이 먼저 촌락이 형성되었다.

그 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 초기에 지방토호의 한 사람인 좌수 홍독수란 거물이 극악천, 고달천 등 주위에 사는 사람들을 모으고 다른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유수암으로 이주시키고 자신도 식솔과 일가들이며 많은 노비들과 무리들을 이끌어 입향 정주하여 많은 전토를 확보하고 사람들이 생업에 터전을 마련하여 마을의 형태를 갖추었으니 이가 바로 유수암의 설촌자이다.

태암감당은 먼 훗날 ‘척화’라는 스님이 있어 사찰을 중건하고 천고사라 이름하여 면면히 내려오다가 조선 숙종 28년 이형상 목사에 의하여 당 오백 절 오백이 파괴 될 당시 사라졌으며, 지금은 절동산이란 이름과 더불어 빈터만 남아 있을 뿐 칠백년의 짙푸른 고색창연한 팽나무 숲속에 그 시절 심지어 오랜 풍상에 젖은 한 그루의 무환자 나무만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옛날의 영고성상의 깊은 사연을 말해주는 듯 고고한 자태로 현세의 유수암을 지켜보고 의연히 서 있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어 오는 터이다.

[역대이장]

역대이장

역대

구분

성명

   취임년월일

1

이장

강성모

1905

2

 

강희경

1910. 2

3

구장

강세행

1914. 3

4

 

강우현

1919. 7

5

 

변정찬

1935. 6

6

 

강계훈

1936. 12

7

 

강영훈

1945. 12

8

 

이공석

1946. 9

9

 

강호선

1947. 11. 2

10

 

변기철

1947. 11

11

이장

강조현

1948. 8

12

 

강태진

1950. 2

13

 

강세부

1951. 4

14

 

이창배

1951. 12

15

 

강조성

1952. 2

16

 

이근좌

1953. 10

17

 

강조성

1955. 6

18

 

고남성

1956. 9

19

 

강조형

1957. 10

20

 

강택심

1960. 6

21

 

강노벽

1962. 5

22

 

강재병

1964. 6

23

 

이근좌

1965. 2

24

 

강우조

1968. 1

25

 

강승휴

1970. 12

26

 

이근창

1972. 1. 12

27

 

강희상

1974. 1. 10

28

 

강능수

1975. 5. 21

29

 

문권일

1977. 2

30

 

변부원

1978. 1

31

 

이계석

1980. 1

32

 

강돈아

1981. 1

33

 

강영호

1983. 1

34

 

강희진

1986. 2

35

 

변창부

1988. 1

36

 

강우춘

1990. 1

37

 

강세호

1992. 1

38

 

강원구

1994. 1

39

 

강기수

1996. 1

40

 

강후병

1998. 1

41

 

강경휴

2000. 1

42

 

문안휴

2002. 1

43

 

이승배

2004. 1

44

 

강인구

2006. 1

45

 

강홍수

2008. 1

46

 

강익중

2010. 1

47

 

이종환

2012. 1

48

 

이영춘

2014. 1

49

 

고영천

2017. 1